한국에 살면서 언제 대서양 건너보겠느냐..는 별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뉴욕에서 훌쩍 날랐던 유럽. 8박9일간의 빠듯한 일정이었고 주 목적지는 스웨덴 친구가 살고 있는 스톡홀름이었기에.. 많은 도시를 둘러보지는 못했다. 아. 여기서 말하는 이친구란 우리 랩에 6개월간 교환학생으로 다녀간 스웨덴 친구, Rezan Fisli. 2학년때 버클리에 머물던 동안 타국땅에서 어리버리할뻔도 했던 우리를 친절하게 챙겨주던 John Ryan 등이 너무 고마웠던 생각에.. 나도 레잔에게 조금 신경을 썼는데, 덕분에 많이 가까워졌다. 결국 그러다 스웨덴까지 날아가게 된 것이지 -0-

처음 가본 유럽이었는데 나름대로 고른 곳이 서유럽에선 파리, 그리고 북유럽에선 스톡홀름. (나중에 알았지만 스웨덴 네이티브 발음으로는 "스딱홈" 정도에 가깝다.) 한달 코스로 유럽여행 다녀오는 사람들은 거의 북유럽은 스케줄에 포함시키지 않는게 대세인것 같은데, 내 코스는 나름 독특하다면 독특하다고 할까.

암튼, 이때가 2004년 7월. 1년반이 지나 기억이 희미하지만.. 묻혀있던 여행사진 정리하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스톡홀름편을 손 대보련다. 이거 올리고 나면 오늘 밤의 헬스 후유증에 늦은 잠자리에.. 내일도 수면부족에 비몽사몽 할듯 -_- 사실은 아직 스톡홀름에 앞서 오르세 미술관 이후에 손 떼었던 파리 사진도 쌓여있지만.. 루브르 박물관의 사진들만해도 엄청나서 감히 손대기가 두려워서..-0-

파리에서 묵었던 민박집은 파리의 남쪽 끄트머리에 있었다. 반면 파리의 관문, 샤를 드골 공항(CDG)은 북쪽 교외에 있었다. (Region 5 였나..) 민박집에서 공항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대략 4번 바꿔타야 했던가.. 암튼 이 사진은 파리 지하철의 허브 샤틀 레알에서 샤를 드골까지 곧장 달려주는 고속라인 RER B 노선.

샤를 드골 공항. 사흘전 뉴욕에서 이리로 들어왔는데, 금새 다시 왔다. 유럽을 비행기로 여행한다고 하니 민박집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들 럭셔리 여행이라고..-0-
근데.. 공항을 거의 다 와서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다. 스웨덴 친구한테 준다고 뉴욕과 뉴저지를 다 뒤져서 한국 전통과자 선물상자를 하나 준비했었는데.. 민박집 냉장고에 넣어놓고는 깜빡 잊고 와버린것 ㅠ.ㅠ 그래서 할 수 없이 Plan B 를 급조. 공항 면세점에서 내 favorite이자 나름 레어아이템인 "다크초콜릿"을 좀 샀는데. 그런데..데..데..

파리 -> 스톡홀름행 내 비행기가 이전 비행기의 캔슬인가 뭔가로 인해 승객들이 주루룩 밀리면서 자리가 없어져버렸다. 에어프랑스에서는 두가지 옵션을 제시했는데, 하나는 (1. 파리 -> 오슬로 -> 스톡홀름 경유행). 또는 (2. 4시간 기다린 후 파리 -> 스톡홀름 다음 비행기 + 150유로 캐쉬백 + 점심식사 쿠폰)
이건 고민하고 자시고가 없잖아! -_- 당근 2번이지! 2번으로 하겠다고 하니 사진 속의 150유로 캐쉬백 쿠폰과 함께 점심식사 쿠폰 등등을 준다. 기다리는 친구에게 딜레이 소식을 전해야겠다고 하니 5유로짜리 전화카드도 선뜻 내어준다. 참고로 파리 <-> 스톡홀름 왕복 비행기 요금이 약 300 US달러였으니.. 편도를 공짜로 타고도 남은 셈이다.

암튼, 다시 배낭 짊어지고 캐리어 바리바리 끌면서 부랴부랴 민박집에 짱박혀있는 선물 회수 프로젝트 시작 -_- 비행기 출발까지 4시간이 남았는데, 민박집까지 빠른 걸음으로 가면 대략 편도에 1시간 40분 정도가 걸릴거라는 계산이 나와서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7월의 파리는.. 정말 덥더라. -_- 암튼 출발 시각을 30분 남겨놓은 시점에 무사히 공항에 골인.. 악착같이 공짜 점심도 챙겨먹고 스톡홀름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이스 타이밍.

스톡홀름 알란다(Arlanda)공항에 도착해보니 친구, 그리고 황송하게도 그 부모님까지 마중나와계셨다. 나홀로 헝그리 여행이었던 파리에서와는 대조적으로 편안하게 볼보 자가용에 몸을 싣고 스톡홀름 교외에 있는 친구 집까지. 친구네 집은 사진처럼 호젓하고 공기좋은 곳에 위치한 아파트였다. 겨울철에는 영하 20도 정도는 우습게 내려가는 동네인데도 발코니를 비롯해서 야외 시설이 제법 있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휴교하는 일은 절대 없다지. "바이킹"의 나라라던가 -_- IBM에서 만났던 프랑스 친구 왈, 파리에서는 눈이 5cm만 와도 모든게 올-스톱 이라던데. ;;)

파리에선 헝그리하게 먹고 술이라면 마지막날 민박집에서 마치 쌀주머니 같은 은박 팩에 들은 팩와인(-0-) 몇잔 마신게 전부였는데. 스톡홀름에서 머무는 동안에는 징하게 먹고 징하게 마셨다. 친구 어머니께서 손수 해주신 저녁을 먹자마자 이 친구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니 "한국에서 친구가 왔으니 와서 술마시세~" 해서 4명을 끌어모았다. 왼쪽부터 현대자동차를 몬다는 '헤리시', 내 친구 '레잔', 나, 그리고 몸짱 '아테프'. 사진에는 안나왔지만 '에릭'이라는 키큰 친구도. 지금은 보드카 두병을 비우고 거나하게 알딸딸한 상태에서 찍은 사진이다. -_-

매일 아침과 저녁 식사를 친구 어머니와 누나께서 손수 해주셨는데, 난생 처음 먹어보는 쿠르드 전통 요리. 신선한 야채와 홈메이드 요구르트, 매콤한 피자 or 또띠아 비슷한 음식 등이 인상에 남았다. 진~한 향이 독특했던 쿠르드 커피도!

아, 참고로 이 친구의 고향은 중동의 쿠르드 지역이다. 불행히도 쿠르드족은 아직 공식적으로 독립 국가가 없다. 터키, 이라크 등을 비롯해서 5개의 인접국가에 나뉘어서 살고 있다고 하는데. 이 친구가 우리 학교에 머무는 동안 한국의 일제강점기에 관련된 역사를 묻더라. 나름 내게 민감한 주제가 아닐까 무지하게 조심스러워 하면서. 아무튼 그래서 쿠르드족은 100년이 넘도록 계속 독립 투쟁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체적으로는 (어디까지나 국제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쿠르드 국기, 쿠르드 지도, 쿠르드 방송국 등등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 옛날 일제시대 시절에 남몰래 태극기 그리고 임시정부 세우고 하던 그때가 지금의 쿠르드족과 비슷했을까.. 특히 터키와는 거의 원수 지간인듯 했는데. 그래서 우리나라는 터키와 혈맹이라고들 한다는 사실을 차마 얘기하지 못했다.

암튼 다시 쿠르드 음식 얘기로 돌아와서. 대체로 유제품, 신선한 야채, 매운 소스, 독특한 빵 등이 많았는데 내 입맛에 꽤나 잘 맞았다. 게다가 친구 어머니께서 계속 권하시는 바람에 매 끼니는 항상 과식이었다. -_- 쿠르드 전통음식의 매운 맛에 길들여져 밍밍한 스웨덴 음식은 boring하다는 이 친구. 한국에 있을때도 매운 음식 좋아라고 잘 먹더라. 이 친구 다음에 다녀간 스위스 친구 Patrice에게는 불닭을 선보였는데. 진작 Rezan한테도 먹여볼 껄 그랬다. ;;

근데. 북유럽 사람들 술 많이 마신다는 소문은 얼핏 들었지만. 이 친구들 페이스, 정말 장난 아니삼!! ㅠ.ㅠ
친구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신 저녁으로 배터지게 밥먹고, 다시 친구들 집으로 불러모아 발코니에서 스웨덴 특산 앱솔루트 보드카 2병과 오렌지 주스로 스크루드라이버 칵테일을 몇잔을 마셨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다시 곧바로 "시내 놀러가자~" 해서는 찾은 곳이 '무쓰바께'라는 야외 Pub. 스톡홀름에 대략 저녁 8시에 떨여졌고, 10시에 저녁먹었고, 12시에 보드카를 비웠으니, 사진속의 무쓰바께 정문에 도착한 이때 시간은 대략 새벽 1시?

무쓰바께에서 내다본 스톡홀름 풍경. 스톡홀름은 수십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물이 많은 도시다. 지금 시간이 새벽 2시가 넘었는데 왜이리 환한고 하니..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백야. 사실은 완전히 밤이 없는 백야는 좀더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고. 이 동네는 한여름이면 대략 두세시간 밖에 밤이 없다고 한다. 물론, 반대로 한겨울에는 하루에 두세시간 밖에 해를 볼수 없다고 하니, 정말 빡센 곳이다. (자살율도 겨울엔 급증한다고)

무쓰바께에서는 레잔의 또다른 이탈리아 출신 친구를 만났는데. 대략 술좀 되가지고는 자기네 축구팀이 최고라고 주문을 외우는 통에 나도 계속 맞장구 쳐주느라 혼났다. -0-

무쓰바께에서 맥주 몇잔 마신 것으로 오늘의 음주 시퀀스가 끝났는가 했는데. 아직 이 북유럽 친구들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_- 시내 번화가의 한 클럽으로 들어가서 또 몇잔 더했다. 근데 이 클럽은 남자들만 있는 그룹은 잘 안받아주더라는. 남자들 많으면 클럽 분위기 흐리고 가끔 싸움질이나 해댄다나 -_- 세상 어딜가나 남자들만 많으면 칙칙해지는건 어찌도 똑같은지;; 뭐 어쨌든 잘 사바사바해서 들어갔다.
이 클럽에서는 Open Marriage를 했다는 중년 부부를 만났는데. 각자 바로 옆자리에서 다른 여자 / 남자와 함께 재밌게 노는 모습이란.. 세상만사 상대주의 원칙을 믿는 나에게도 다소 놀라운 모습이었다. 미국 보다 개방적인 유럽, 유럽에서도 더 개방적인 북유럽. 이 곳에서도 Open Marriage는 아직 흔하지는 않다고.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그야말로 불야성이다. 우리나라 저녁 7시의 강남역 정도라고 해도 믿겠다. -_- 겨울철에 해가 워낙 짧다보니 여름철에는 마치 물을 만난 고기처럼 알뜰하게 즐기는게 아닌지.

새벽 5시경, 집으로 돌아가려고 들어가던 전철역 앞에서. 이때가 아마 무절제한 오랜 미국생활로 내 생애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던 시절이었지 -_-;; 여기서 재미난 기억, 아테프는 맥도날드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ㅎㅎ 나중에 이 멤버들과 한번 더 비슷한 시간에(-_-) 무쓰바께에 술마시러 왔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맥도날드 햄버거 대략 10개를 사다가 친구들 나눠주고 자기도 계속 꾸준히 먹더라. ;;; 아테프는 사실 엄청난 수준의 근육질 몸짱인데.. 정크푸드의 압박 속에서 그 비결이 궁금하다.

스톡홀름의 지하철은 대략 이렇게 생겼다. 꾸질꾸질하고 지린내 나는 뉴욕 지하철과도 깔끔함의 차원이 다르고.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는-0- 파리 지하철과도 모던함의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가격-_-도 차원이 다르다. 친구 집에서 스톡홀름 시내까지 대략 30분 코스였는데. 이정도면 뉴욕에서는 무조건 2 US달러. 파리에서는 대략 1.2 유로. 하지만 스톡홀름에서는 (몇 크로네 였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대략 우리 돈으로 4500원에 달하는 요금을 내야 한다. 다만 나는 고맙게도 레잔네 형의 정기 승차권을 빌려서 공짜로 타고 다녔다. 이래저래 친구덕 많이 본다.

객차와 객차 사이의 칸막이가 없는 개방형 구조의 지하철. 구조도 그렇고 실내 인테리어도 그렇고 홍콩의 KCR 라인(구룡 - 중국본토 노선)과 대략 유사하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던 스웨덴어 실내 방송이 기억난다. "나스타, 어쩌구 저쩌구" (대략 "넥스트 스탑 이스, 어쩌구 저쩌구"와 equivalent.) 그나마 방송도 안해주고 문도 손으로 열어야 하는 파리 지하철에 비하면 양반? -_-

친구네 집 앞의 간이 전철역. 지금은 공사중이라고. 집 앞 100미터에 전철역이 있어서 무척이나 편리했다. 그나저나.. 벌써 날은 훤히 밝았다. 지금 시각이 아침 6시 -_- 그런데 곧바로 집에 안들어가고 지하철에서 만난 초면의 어떤 스웨덴 사람과 대략 20분간 노상 토론을 벌였다지. ;;; 토론 문화가 워낙 일반적인 서양이라 그런지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토론 주제는 스웨덴 사회의 다민족성과 잠재적인 차별 문제? 초면의 그 논객은 (ethnically) 스웨덴인이었고.. 레잔과 헤리시는 쿠르드인. 나는 당근 한국인. 참고로 방향이 달라서 헤어졌던 아테프는 이집트인, 에릭은 스웨덴인이었다. 새벽 6시 취객 네명이 벌이는 노상 토론이라. 다들 살짝 술기운에 허허실실, 민감한 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재밌는 토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는.


파리에서 4일간에 걸친 일일 4시간 수면 + 익스트림 워킹으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몸을 이끌고 스톡홀름 땅을 밟은 나를 반긴 것은 친구와 그 가족들의 따뜻한 환대..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백야에서의 음주 달리기-_-  "손님 = 가족"이 쿠르드 가정의 문화라던가. 내가 뭔가 격식을 차리려는 눈치를 보이자 헤리시가 "쿠르드에선 집에 머무는 동안은 가족의 일부이니 절대 그러지 말라"고 야단치던 기억이 난다. ㅎㅎ 더도 덜도 말고 마치 가족처럼 자연스럽게 대해주시던 그분들.. 정말 고마웠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완전 초면에 첫날 잠이 들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져서는 오후 2시에 깨버렸다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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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ber

2006/02/21 03:29 2006/02/21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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