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 아침 6시 7분, 해발 1915 천왕봉 정상에서 저 멀리 동쪽 지평선을 뚫고 솟아오른 일출의 순간.
오늘은 2박3일 지리산 종주의 대미를 장식할 천왕봉 일출 등반의 날.
3년전 첫 종주때도 지금처럼 장터목에서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천왕봉 일출에 도전했었다.
그러나..그러나..-_-..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기다리고 있노라니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결국 구름 너머 어딘가로 떴을 해는 보지 못하고 장대비를 맞으며 푸욱 젖어서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천왕봉 일출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던가.
아버지는 천왕봉 일출을 보셨다는데 나는 못봤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내가 부덕했던 것이 아닐런지. -_-
암튼.. 그리하여 이번 업그레이드 종주에서 다시 도전하게 된 두번째 천왕봉 일출!
그동안 내가 모자랐던 덕을 쌓았으려나..;;;
오늘의 코스는 아래 지도에서 보라색으로 표시된 코스로,
장터목을 떠나 천왕봉에서 일출에 도전한 후, 다시 되돌아내려와 장터목을 거쳐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역시 클릭하면 큰 지도 뜹니다.)

천왕봉은 해발 1915m로, 한라산(1950m)에 이어 남한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
장터목과 천왕봉 사이의 거리는 1.7km, 해발고도는 약 250m 가량 차이가 난다.
장터목에서 출발, 제석봉이라 불리우는 1800m 가량의 봉우리를 살짝 넘어 천왕봉에 도착하게 된다.
자.. 지금 시간 아침 5시 30분.
별안간 다 올라와버린 천왕봉 정상 -_-
정상에 있는 저 비석에는 "지리산 천왕봉 1915m"라고 한자로 새겨져있고,
뒷면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 라고 새겨져있더라.
장터목 대피소에는 워낙 일출족들이 많다보니 아예 일출 예정 시간을 방송해준다.
장터목에서 알려준 일출 예정 시간은 아침 5시 50분.
평균 등반 시간이 1시간 30분이라 하여,
새벽 4시경에 부시시 일어나 역시 땀냄새 나는 수건으로 얼굴 대충 문지르고,
물 한모금, 초코바 하나 빨고 랜턴들고 출발했다.
랜턴 없이는 내 손바닥 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을 뚫고,
새벽 안개와 땀에 젖어가며 약 한시간 만에 정상에 도달했다.
해가 떠오르기 전, 먼 동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다.
어둠 속에 뭍혀서 보이지 않던 산봉우리들,
그리고 봉우리 사이사이에 깔린 운해(雲海)들이 그 모습을 어렴풋이 드러내기 시작한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어두웠는데.. 사진이 노출 오버다.
이 심령사진-_-틱한 사진은..
해 뜨기 전의 저 실루엣을 배경으로 뭔가 사진을 남겨보려고 시도한 결과물인데..-_-
노출이 오버되서 밝게 보이지만 사실은 손전등을 얼굴에 겨냥해야만 오토포커스가 잡힐 수 있었다.
천왕봉 정상의 바위에 걸터앉아 일출을 기다리는 경민옹.
장터목에서는 5시 50분경에 일출을 예상했지만 실제로 해가 떠오른 시간은 6시 7분이었다.
남한 육지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니 당연히 바람은 거칠것없이 씽씽 불었고..
우리는 그 바람을 맞으며 약 40분 가까이 부동자세로 일출을 기다렸다.
서서히 걷혀가는 새벽 안개와 구름 너머로 드러나는 산봉우리들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역시 일출을 기다리면서 한컷.
아마 그때의 주변 밝기가 이 사진의 배경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물론 인물은 플래시빨이고-_-
먼동이 터오면서 주변이 서서히 밝아오던 중이었다.
천왕봉 정상에서 정동(正東) 방향에서 살짝 오른쪽을 바라보니 저런 운해가 있더라.
옹기종기 모인 봉우리들 가운데로 하얀 구름이 가득 차오른 것이 금방이라도 넘칠듯 했다.
지금 시각 아침 5시 54분..
주변은 제법 밝아졌는데 아직 해 자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5시 30분경에 우리가 정상에 올랐을때는 우리 외에 단 두명뿐이었는데,
어느덧 다른 사람들도 십여명이 올라와 나름대로 정상에 자리를 잡고 해를 기다리고 있다.
떠오르는 해에 기원할 각자의 소원을 가슴속에 품은채..
역시 같은 시각 5시 54분..
동쪽의 운평선(?)은 어느덧 아까보다 훨씬 붉게 타오르고 있다.
겹겹이 보이는 병풍과도 같은 산맥들과 그들 사이에서 넘실대는 구름과 함께..

드디어 오전 6시 7분,
붉디 붉은 저 구름바다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순간!
(클릭하면 큰 사진 뜬다)
내가 지난 3년동안 뭔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덕을 쌓았는지,
아니면 이틀동안 32.5km를 겔겔대며 뚫고 온 우리가 기특했는지,
어찌되었건 이번의 지리산은 확실한 감동을 안겨주는 일출을 선사했다.
발바닥의 무수한 물집도, 다리의 근육통도, 몸 구석구석의 땀냄새도 말끔히 잊혀지는 마약과도 같은 순간,
과연 이보다 더 멋진 자연의 선물이 세상에 흔할까.

해는 일단 모습을 드러내면 빠르게 솟아오르며 주변의 어둠을 신속히 제압한다.
밝아오는 햇빛 속으로 빨려들듯한 환상을 느끼며,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소원들을 빈다.
하나씩 하나씩, 빠짐없이, 순서대로.
정상에 모였던 다른 사람들도 이 얼마 안되는 시간 동안은 조용하다.
(역시 클릭하면 큰 사진)

해가 모습을 드러낸지 10분.
언제 그랬냐는 듯 어둠의 흔적은 이미 찾아볼 수 없다.
하얗게 산야를 뒤덮은 구름의 바다가 지리산의 신비함을 더해준다.
(역시 클릭하면 큰 사진)

해가 떠오른 반대 방향, 서쪽을 바라본 장면.
천왕봉의 그림자가 저 멀리까지 길게 드리워져있다.
(역시 클릭하면 큰 사진)

어느덧 지면을 완전히 박차고 당당히 떠오른 2005년 9월 12일의 해가 한껏 그 빛을 과시한다.
(역시 클릭하면 큰 사진)

이제 천왕봉을 내려오는 길.
일출의 감동을 뒤로하고, 하얀 운해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잡아내며..

성공적인 일출을 선물받은 9월 12일의 아침은 정말 화창했다.
이번 사흘의 일정 중에 가장 멋진 날씨였던 날.
날씨가 좋아서인지, 장터목 대피소에 헬리콥터가 들르면서 짐을 실어가고 있다.
산에서 밑으로 내려줄 짐이 대략 쓰레기밖에 더 있을까..
원칙적으로 쓰레기를 버릴 곳이 없어서 등산객 자신이 되가져가야 하는 이곳이지만,
원칙과 현실의 괴리는 저 짐들의 크기가 보여주고 있다.
근데.. 사실 이 사진 찍느라 온몸에 무수한 모래와 돌가루를 뒤집어썼다. -_-
헬리콥터가 내뿜는 바람이 말그대로 장난이 아니더라!!

화창한 아침을 맞아 과감히 앞마당 야외에 아침 밥상을 펼쳤다.
지리산에서의 마지막 식사.
오늘 아침의 메뉴는 쌀밥 4인분, 칼국수 4인분-_-, 그리고 김, 참치, 김치, 장조림 등의 밑반찬이다.
우리가 열심히 밥을 하는 동안 대피소장님은 여러번 무전기로 무언가를 교신했다.
헬리콥터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_-
거시기가 또 오면 코펠이고 뭐고 죄 날려버릴 것이기 때문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헬리콥터에 만반의 피난 준비 태세를 갖추며 가슴 졸이는 한끼의 식사였다.

저 멀리 계곡 사이로 보이는 마을이 우리가 내려갈 백무동.
이번에는 대략 해발 1100m를 5.8km에 걸쳐서 내려가야 한다.

거의 유일하다싶은 이번 종주 멤버 네명이 함께 찍은 사진.
이제 하산만이 남았다.
음..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3시간 동안의 하산이 제일 힘들었던듯 -_-
둘째날의 11시간 40분 익스트림 행군보다도..
무릎 관절과 다리 근육이 다 풀려가지고서리..
가파른 돌계단을 끝도없이 내려가는건 정말 고문이었다.
게다가 백무동 하산길은 화엄사 등반길에서 보았던 완만한 서비스 코스 하나 없이..
매표소 입구 코앞까지도 주구장창 가파른 돌계단이었다. -_-
어찌되었건, 총 40km에 걸친 2박3일간의 종주도 무사히 끝.

지금 시각 오후 6시 40분..
Back to the Civilized World..-_-
지리산 일대에서 가장 큰 도시인 남원 시내를 돌고 돌아서 발견한 가장 그럴싸한 삼겹살집, 이름하여 녹돈.
보성 녹차잎을 먹고 자란 돼지라나..
어찌되었건, 2박3일간의 결핍된 신선한 동물성 단백질을 마음껏 섭취해주고 있는 중.
(저친구는 고추를 잘못 씹은 모양이다 ㅎㅎ)
이 쫑파티가 있기 전, 오늘의 하산 완료 시각은 오후 1시.
차는 출발지였던 전라남도 구례 화엄사에 주차되어있었고,
우리가 내려왔던 곳은 경상남도 함양의 백무동.
백무동에서 일월로, 일월에서 남원으로, 남원에서 구례로..
시외버스를 세번 갈아타고 두시간에 걸쳐서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를 찍으며 원점으로 컴백.
이제는 평지도 걷기 힘든 몸을 근처 사우나에 담그며 휴식을 취한 후 삼겹살집 수색에 나섰더랬다.
삼겹살 쫑파티 이후에는 콘도로 이동했고..
포도밭에서 직접 사온 포도를 곁들인 맥주 한잔,
그리고 바로 12시간에 걸친 취침이 뒤따랐다. -_-
자.. 이로서 내 두번째 지리산 종주는..
2박3일간의 익스트림 라이프에 대한 기억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일출의 감동과 함께 여기서 끝.
다음 목표는..
저렴한 한성항공도 개항했고, 마침 멤버중에 제주도 주민도 계시고 해서 한라산이 될뻔 하였으나..
10월까지 한성항공편이 죄다 매진인지라-_- 목표수정.
그래서.. 다음은 설악산 대청봉 정상(1708m)에서 동해바다 수평선 위로 솟아오를 일출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립공원들을 높이순으로 주루룩 섭렵해주실..;;;
2위 지리산, 3위 설악산을 찍고, 다시 1위 한라산을 찍고, 그담부턴 4,5,6,...
아싸 -_-
키워드: 여행
Posted by sab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