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시부터 06시에 걸쳐 끝없이 벌어지고 있는 다섯 남자의 취중 난상 토론.
그 가운데 그야말로 '최소한'만큼의 기록만 남기고자 하는 블로거 본인.
우선, 나름 심각할 수 있는 본문에 앞서 명랑한 짤방성 사진부터 몇장 -_-
(이미지 갤러리이기 때문에 RSS 리더에 따라 누락될 수 있습니다. 이럴땐 직접 방문해주는 센스 ^^)
영화적 표현의 수위와 다양성에 대해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허용 범위의 수준, 또는 그것 자체의 존재 의미에 대한 논쟁에서 발전해버린 주제. 보다 구체적으로는, 김기덕 감독님의 새 영화 "시간"에 얽힌 김감독님의 화제 발언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김기덕 감독의 새 영화 제목이 뭐지?"
"'시간'이래"
그러면서 조크, "설마 시간-_-을 다른 걸로 오해하는 인간은 없겠지?" --> 여기서 시작해버리고 말았던 "영화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
표현하고자 하는 자유, 표현을 받아들여보고자 하는 자유. 그리고 판단해보고자 하는 자유.
왜 그러한 자유가 보편적 가치, 사회적 규범이라는 이름으로 제한받아야 하는가.
왜 최소한으로 표현을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을 보장받는 것 조차도 위협을 받아야 하는가.
설사 채널이 보장된다 하면 과연 그걸로 해피할까.
절대적인 것이 과연 존재할까.
보편적 가치라는 것은 과연 과장되지 않은 표현일까.
보편적 가치는 사실 다수적 가치의 오만 섞인 표현이 아닐까.
과거에 보편적 가치라고 믿었던 것들 중에 얼마나 아직까지 보편적이라는 이름으로 보존되고 있을까. 오늘날 보편적 가치라고 사회적 합의를 얻고 있는 것들이 앞으로 백년, 천년 후에 얼마만큼이나 여전히 보편적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인간 생명의 존엄성. 보편적 가치지. 근데 모든 인간 생명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지 불과 몇세기나 지났을까. 미래의 세계에서도 과연 모든 인간의 생명이 똑같이 소중할까. 디스토피아의 고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보면, Star Trek의 The Borg를 보면, 하다 못해 건담 SEED(-_-)의 Destiny Plan을 보면, 그 밖에 수많은 문학/예술 작품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보편적 가치라는 명제의 반례는 무궁무진한데.
보편이라는 그럴싸한 탈을 쓰고 사실은 다수가 소수를 억제하는, 아니, 다수를 컨트롤할 수 있는 영향력 계층이 그렇지 못한 계층을 억제하는 그런 실체가 아닐까. 결국은 지금 이 시대의 영향력 계층의 입지를 위협할 수 있는 씨앗을 억제한다는, 과거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이 사회라는 조직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행태의 그럴싸한 포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와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문화의 상충관계. 결국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관계. 다양성과 자유의 등가 관계. 다양성의 존중. 자유의 추구. 어라,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어떡할래? 그러면서 일어나는 점진적인, 또는 극적인 사회의 변화. 그러한 단계적 변화들 속에 과연 일관적인 흐름이 있을까. 과연 백년, 천년 후의 흐름이 역시 오늘날의 사람들이 추리하는 방향의 연장선상에서 흐르고 있을까.
아아. 바로 "보편적" 가치와 "사회적" 합의를 정면으로 건드릴만한 발언이 쌔고 쌨지만 오프더레코드. -_-
Posted by sab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