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5월 31일, 제 4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 투표일.
난 26일에 일찌감치 부재자 투표를 끝냈기에, 당당하게-_- 휴일로 보냈다. 뭔가 건설적인 휴일을 보내자..해서 지른 것이 덕유산 등산.

사실 따지고 보면 덕유산은 2001년 이후로 매년 수십번씩 정상에 올랐다. 다만, 리프트로-_- 스키 신은채로.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1614m)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무주리조트의 설천봉 정상.

유일하게 스키 안신고 덕유산을 오른 역사가 딱 한번 있다. 2005년 1월에 랩MT로 무주리조트를 왔는데, 무주구천동 구경해보자는 악의축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랩원 거의 전원이 한겨울에 삼공매표소에서 백련사까지 왕복 12km의 산책(?)을 경험한 적도 있긴 하다.

그래서 이번 덕유산 등산은, 덕유산을 오른 최초의 "등산 다운 등산"이며, 처음으로 눈덮인 겨울산이 아닌 파아란 초여름의 덕유산을 경험한 셈이 된다.
이번 등산 코스는 왼쪽 지도에서 나타난 파란색 코스. 삼공매표소를 출발, 백련사까지 6km의 서비스코스를 산책한 후, 해발 900m의 백련사에서 해발 1614m의 향적봉 정상까지 2.5km에 걸쳐서 본격적인 등산. 여기서 다시 1km 남짓 떨어져있는 해발 1594m의 중봉으로 덕유산 주능선을 사알짝 "맛"만 보고, 올라올 때와는 다른 경로로 '오수자굴'을 거쳐 백련사, 그리고 삼공매표소로 돌아가는, 총 왕복 19km의 코스.

참고로 위 지도의 빨간색 코스는 향적봉에서 삿갓재 대피소를 거쳐 남덕유산까지 14.8km에 이르는 덕유산 주능선 종주 코스. 작년에 종주했던 지리산 주능선이 25km 남짓인 것에 비하면, 뭐랄까 가뿐해보인달까.. 게다가 덕유산은 이름처럼 후덕하고 유한 산이라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중봉 정상에서 멀리 펼쳐진 완만한 능선길을 보니, 하산하지 말고 그냥 능선따라 내지르고 싶은 충동이 심각하게 일었다.

전날밤 음료수와 간식꺼리를 바리바리 쇼핑하고 학교를 8시쯤 출발했다. 그나저나 역시 이번에도 평소 시차 습관때문에 3시간 취침 후 출발하는 스페셜 패키지를 옵션으로 달았다. 사흘전의 마라톤에서와 마찬가지로 -_-

오전 9시 30분경, 덕유산 삼공리 주차장에 도착. 드디어 출발이다. 햇살은 화창하기 그지없다. (어차피 3주후에 있을 훈련에서 새까맣게 타겠지만-_-) 일단 썬크림 덕지덕지 바르고, 배낭 메고, 내 평소 습관대로 배낭 앞끈에 카메라와 핸드폰 붙이고 출발.

(본 포스팅의 일부 사진은 푸석 작품이에요)

무려 5km가 넘는 계곡물과 함께하는 덕유산 산책로

덕유산은 계곡이 좋다. 며칠전에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몰라도, 계곡물이 시원하게 콸콸콸 흐른다. 계곡에 물이 많으니 소리도 시원하고 기온 자체도 실제로 시원하다. 보너스로 다양한 새들의 스테레오까지. 찌르르륵 하는 놈들, 구구구- 하는 놈들, 째륵째륵 하는 놈들. 산책로 상의 안내판을 보니 "스치삣 스치삣" 하는 놈들도 있다던데, "스치삣"이라는 의성어의 정체는 대체 모르겠다. -_-

사실 등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덕유산 코스는 좀 사기다마라고 볼 수 있다. 정상까지 대략 8.5km이지만 그중에 6km가 위와 같은 "Designed for Vehicles" 상표를 달고 있기 때문. 옆으로 끊임없이 계곡물이 흐르기 때문에 나름 재미는 있다. 다만 서비스 코스가 끝난 후 정상까지의 2.5km는 지금까지의 서비스가 무색할 만큼 수직 높이 700m를 사정없이 올라간다.


대략 해발 900m의 백련사 입구에서. 서비스 코스도 여기서 끝.

계룡산에서 동학사와 함께 등산을 시작한다면, 덕유산에선 백련사와 함께 "진짜" 등산이 시작된다. 지난 2005년 1월에 한번 구경했던 백련사이기도 해서, 내려오는 길에 구경하기로 하고 정상을 향해 ㄱㄱ.


대략 해발 1300m. 비록 시들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철쭉.

백련사를 지나 할딱할딱 끊임없는 계단을 오르던 도중, 해발 1300m 정도의 고도에서 아직 지지 않고 남아있는 철쭉을 볼 수 있었다. 철쭉철은 대략 2주전이었다고 하는데, 그나마 구경할 수 있어서 다행. 비록 좀 시들시들하긴 했지만서도.


휴식은 홍차와 함께 - 노멀 버전.

휴식은 홍차와 함께 - 2그램 오버 버전.




덕유산에선 특히나 '주목'이라는 나무 종을 자주 만난다. 학성이가 들었다는 어떤 등산객 말씀에 의하면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나무라던데. 등산객들 특유의 뻥이 좀 있겠지만서도 암튼 오래 사는 나무라고 하니 적어도 수백년은 살지 않을까.


끊임없는 나무 계단길. 잠시 휴식중.

덕유산 향적봉 정상 증명 사진 :-)

낮 12시, 매표소를 출발한지 대략 2시간 30분 만에 해발 1614m 향적봉 정상을 밟았다. 날씨는 상당히 쾌청. 멀리 사알짝 안개인지 스모그인지가 낀 것만 빼면. 구름 한점 없는 슈퍼 클린 데이에는 저 멀리 남쪽으로는 지리산 천왕봉이, 북쪽으로는 계룡산 정상이 보인다던데. 오늘은 천왕봉은 아주 어렴풋이 실루엣만이 보였다. 작년에 천왕봉을 3km 남겨놓은 지점에서 어렴풋이 보았던 그 느낌과 비슷하게.


향적봉 정상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무주리조트 설천봉 정상.

정상에 오르고 나니 매 겨울이면 뻔질나게 드나들던 무주리조트 설천봉 정상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설천봉까지는 곤도라로 올라온 후 산책하는 기분으로 향적봉 정상에 오르는 분들도 적지 않다. 명색이 1614m 정상인데, 힐 신고 치마 입으신 여성분들의 모습을 보니 좀 낯설다. -_- 그나저나 슬로프가 새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겨울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불그죽죽한 슬로프가 황량하긴 황량하다. 등산하시는 분들이 욕할만도 한데. 난 저 슬로프를 상당히 애용하는 고객인지라 입다물고 있을란다.


정상에 삐죽 솟은 바위 위에 걸터 앉아서. 멀리 보이는 능선길이 무주리조트 실크로드 슬로프.



절벽끝에서 소심하게나마 쑈. 애들은 따라하지 마세요 -_-

정상에서 만난 꼬마. 산에 오르니 그렇게 좋더냐.

이제 점심시간. 정상에서 멀리 능선과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점심시간. 사실 배고파 뒤지는줄 알았다. -_- 위 사진에 보이는 분들은 고기 구우시고 산사춘까지 아주 제대로 상을 차리셨던데. 흑 부럽. (음, 그러고보니 작년 지리산 장터목 산장에서는 아예 압력솥을 이고지고 올라오신 팀을 만났지. "역시 밥은 압력솥에 해야 맛있어!" 하시면서 -_-) 산사춘 하니 또 생각나는데, 작년에 장터목에서 은하수를 올려다보며 불던 소주 병나발, 그리고 2002년에 아버지랑 지리산 올라왔을 때, 연하천에서 옆 테이블에 앉으신 팀의 삼겹살과 울 아버지 비장의 아이템 소주를 트레이드해서 먹었던 기억이 -_-;;

삼겹살구이와 소주한잔의 추억은 추억대로. 오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김밥 세줄. 안습 ㅠ.ㅠ



단무지가 이따만한 김밥이지만, 어쨌거나 배고파 돌아가실 마당에 뭐든 zonan 맛있다. -_-

결국 대피소 매점에서 지른 컵라면. 컵라면 안먹은지 1년도 넘은 것 같은데, 이렇게 맛있을수가. ㅠㅠ

중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바로 앞에서 멀리까지 펼쳐진 길이 종주 코스.

밥도 먹었겠다, 적당히 노닥거리고 길을 재촉했다. 1km 남짓 떨어진 중봉 까지는 순식간. 위 사진처럼 14km의 종주코스가 "이리 오삼~" 하고 손짓하는데, 우리의 예정대로라면 여기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산 코스를 잡아야 한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일까, 젠장! 종주코스의 뽐뿌가 장난 아니었다! 14km 정도라면, 열심히 밟으면 해 떨어지기전에 삿갓재 대피소까지 도착할 수 있을텐데 말이지.


아아 종주코스의 뽐뿌. 우리는 정말로 진지했던 것이다. 지도 보면서 연구하는 중. 하다못해 능선 맛배기라도 더 볼 수 없을까. 이럴까나 저럴까나~ 했지만 결국은 냉철한 이성의 판단을 따르기로 했다. 언젠가 돌아와서 제대로 종주코스를 달려보자 하면서 계획대로 하산.


앞에서 소개했듯, 덕유산에는 '주목'이라는 나무종이 꽤나 많다. 근데 위의 표지판에 "주목 7436본"이라고 써있는데, 정말 일일이 다 센거냐 OTL


고도가 높다보니 아직 채 펴지도 않고 봉우리만 바글바글한 철쭉도 심심찮게 보인다. 내려가던 도중, 뒤늦게 철쭉구경을 오셨는지, "위에 철쭉 있어요?" 물어보시는 팀도 계시더라.


역시 사람은 배가 부르면 비로소 발랄-_-해지기 마련이다.



이제 다시 백련사로 돌아와서.. 근데 대웅전까지 계단이 100개도 넘는다 OTL.
암튼 산에 오면 좋은게 하나 있으니, 뭔가 "기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산꼭대기에서 일출을 볼 때나, 아니면 잠깐 절에 들렀을때 부처님 앞에서 등등. 보통 소중한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경우가 많다. 난 officially 무종교인이지만, 산에 올랐다가 절에서 간단하게 드리는 기도는 신기하게도 별 거부감이 없다.


백련사 풍경 한장. 아직 5월인데 새빨간 단풍나무라니, 신기신기.

등산의 마무리는 역시 막걸리 or 맥주 한잔. 파전은 옵션. 여기 파전은 예상 외로 푸짐하다.

"계곡이 좋아요"

뭔가 건설적인 일을 했다는 뿌듯한 휴일을 만들어준 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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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ber

2006/06/03 06:09 2006/06/03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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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oosuk 2006/06/04 16:35 # M/D Reply Permalink

    덜덜덜하며 오르고 내렸지만 역시 지나고 나면 좋은 추억인게야. ㅎㅎ
    오늘 날씨 더워서 그런지 그때 들었던 계곡 물소리가 자꾸 생각난다.

    1. saber 2006/06/10 04:27 # M/D Permalink

      이제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속리산도 기대된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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